[대한축구협회 인터뷰] 이민걸 서울중랑 구단주 “40년째 클럽을 운영하는 이유는…”

인터뷰 중인 이민걸 서울중랑축구단 구단주

지금 K4리그에서 ‘창단 42주년’를 표방하는 클럽이 있다면 믿겠는가. 이 클럽을 창단한 ‘구단주’는 창단 당시 19살의 젊은이였다. 한때는 이 팀의 중앙 미드필더이자 감독이었던 그는 지금도 여전히 구단주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인터뷰 도중 ‘대표’라는 호칭을 쓰자 그는 점잖게 “대표가 아니라 구단주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대표와 구단주는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클럽의 ‘오너’로서 40년 동안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팀을 운영해왔다는 자부심이 느껴졌다.

현재 K4리그에 소속된 서울 중랑축구단의 이민걸(61) 구단주를 만났다. 서울 중랑구 봉화산로에 위치한 4층짜리 사옥 전면에는 중랑축구단의 활약상을 담은 대형 걸개가 걸려있었다. 이민걸 구단주가 직접 운영하는 사업체(퍼스트써치)의 본사 건물이자, 중랑축구단의 본부다. 

인터뷰를 하기 전에 주변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니 ‘축구에 미친 사람’이라는 평이 많았다. 사업을 통해서 벌어들인 수익의 상당액을 축구 클럽 운영과 지역 유소년 육성에 쏟아붓고 있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올해 프로 1부리그부터 동호인 7부리그까지를 2027년에 승강제로 모두 연결하겠다는 ‘디비전 시스템 완전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이 피라미드의 중간에 위치한 K4리그 팀의 구단주를 만난 것은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상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랑축구단 사무실이 있는 건물

– 서울중랑축구단의 홈페이지를 보면 그 뿌리를 1982년 서울 면동초등학교에서 시작한 ‘아람 축구단’으로 두고 있다. 그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아람 축구단은 요즘 개념으로 하면 동호인 축구팀이었던 것 같은데. 

내가 대학교 입학을 앞둔 고3 겨울방학때였다. 당시 고려대 법대에 합격한 상황이었는데, 우리 동네에 축구를 제법 잘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과 함께 축구팀을 하나 만든 거였다. 내 나이 19살 때였다. 그 팀에서 선수도 하고, 감독도 하고 그랬다. 워낙 어린 시절부터 축구 선수가 되고 싶었는데, 그런 식으로나마 축구의 꿈을 이루고 싶었다. 팀 이름을 아람 축구단으로 정했다. 서울 강북지역 클럽축구 무대에서는 꽤나 강팀이었다.

– 어린 시절부터 축구 선수가 꿈이었다는 건가.

서울 정릉에 있는 숭덕초등학교에서 핸드볼과 육상 선수를 했다. 5학년때 핸드볼로 전국대회 우승을 했으니 꽤 잘하는 팀이었다. 핸드볼과 육상을 한 것도, 나중에 축구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근처에 있는 고려중학교에 진학하니 축구부가 없었다. 표현이 조금 그렇지만 축구가 좋아서 ‘축구 동냥질’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아들이 한 명이어서 아버지가 축구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보성고에 진학한 뒤로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법대 말고는 서울대의 다른 과에 갈 성적은 나왔는데, 아버지가 법대를 원하셔서 고려대 법대로 진학했다.

– 축구 선수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을 풀기 위해서 어린 나이에 팀을 만들었다는건데.

어린 시절 미아리 산동네에서 어렵게 살다가 집이 철거를 당하고 1977년쯤에 면목동으로 이사왔다. 그렇게 이 동네에 정착하게 됐는데 고3 마지막 겨울방학 어느 일요일에 일반인치고는 꽤 공을 잘 차는 사람들과 만났다. 내 나이와 비슷하거나 두 살 위의 형뻘인 사람들이었다. ‘진짜 선수’보다는 못차지만, 일반인보다는 월등히 높은 수준의 축구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과 의기투합해서 팀을 만들었다. 

– 아람 축구단이 1992년에 팀 이름을 무스탕 축구단으로 바꿨다고 소개 자료에 나와있다.

당시에는 강북 지역에 꽤나 실력있는 팀들이 많았다. 지금 대학축구연맹을 맡고 있는 변석화 회장은 그때 월계축구팀을 이끌고 있었다. 우리와 엇비슷한 실력이어서 서로 경기도 자주 했다. 클럽 축구팀이 출전하는 대회들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는데, 생각해보니 아람이라는 이름이 너무 약해 보이는거다. 그래서 야생마나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폭격기 등 다양한 의미가 있는 무스탕으로 팀 이름을 바꿨다. 그때 강북 지역 클럽팀에는 대학까지 선수로 뛰었던 사람들이 멤버로 가입해 같이 활동했다. 팀들의 실력이 진짜 대단했다. 나중에 당시 강북지역 동호인 클럽을 뿌리로 하는 엘리트 팀들이 다수 생겨났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월계축구팀을 모체로 했던 험멜 팀이 K리그 2부에 충주 험멜이라는 이름으로 진출했다. 또 지금 K4리그에는 서울 노원 유나이티드와 우리 팀(중랑축구단)이 뛰고 있다. 당시에는 강북 축구가 셌고, 강남에 있는 팀들은 조금 약한 편이었다.(웃음)

경기전 기념촬영을 하는 서울중랑축구단 선수들.

– 그러다가 2012년 대한축구협회가 운영하던 챌린저스리그에 참여하면서 ‘중랑 코러스 무스탕’이란 이름으로 재창단한다. 당시 법무법인 코러스가 후원하면서 ‘변호사가 만든 축구팀’으로 세간에 관심을 모으게 되는데.

그때 대한축구협회에서 챌린저스리그에 새로 참여하는 팀에게 재정 안정성에 대한 보증을 요구했다. 리그 도중에 팀이 해체하는 일이 가끔 일어나니까 일종의 예방책이었다. 코러스는 고려대 출신 변호사들이 만든 법무법인이었는데, 내가 운영하고 있던 ‘퍼스트써치’와 밀접한 협업 관계가 있었다. 또 1년 후배인 코러스의 박형연 대표변호사와는 학창 시절부터 절친했던 사이였다. 박 변호사가 흔쾌히 재정 보증을 약속했는데, 축구협회에 보내는 공문 안에 ‘운영을 책임진다’는 식의 표현이 있다보니 로펌에서 운영하는 축구팀으로 밖에 알려지게 된거다(웃음). 

사실 대한축구협회가 2007년에 프로인 K리그, 세미프로인 내셔널리그, 그  아래에 3부 개념의 아마추어 최고 리그인  챌린저스리그를 출범할 때부터 참여를 고민했다. 우리 무스탕 팀은 진짜 선수 출신들이 뛰는 클럽 문화를 이끌어왔다는 자부심이 있었으니 당연히 챌린저스 리그 출범에 빠질 수 없다는 생각이 컸다. 다만 자금 여력 등 현실적인 조건을 고민하다보니까 참가가 조금 늦어졌다.  
 

– 2012년 2월 챌린저스 리그 참가 당시 기사를 보면 ‘샹향식 클럽 운영’이라는 개념이 눈에 띈다. 당시 챌린저스리그는 프로와 내셔널리그에서 밀려난 선수들이 뛰는 무대였다. 성적을 내려는 팀들은 상위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러스 무스탕은 이와는 달리 상위리그에서 뛰던 선수들을 영입하는 ‘하향식’보다는 챌린저스리그에서 선수를 키워내 상위리그로 진출시키겠다는 ‘상향식’ 운영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구단 운영 철학을 내세운 이유는 무엇이었나. 

우선 공식적인 이유가 있다. 챌린저스리그에 참가하려면 운영 자금 확보가 필요한데, 스폰서십 확보를 고민했다. 지금도 우리 홈구장인 중랑구립구장에 가보면 현수막에 ‘법무법인 코러스’와 ‘퍼스트써치’외에 ‘퍼스트어메리칸 권원보험’도 있다. 이 세 회사는 업무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권원보험은 부동산 매매 과정에서 해당 부동산의 소유권을 증명하고 보증하는 보험을 뜻하는데, 일종의 리스크 관리 사업이라고 보면 된다. 2002년에 권원보험 관련 사업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내가 시작했다. 그때부터 퍼스트어메리칸 권원보험과 협업을 하고 있는데, 새로 챌린저스 리그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 회사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로 했다.  지원 요청을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 팀은 단기적인 성적에 급급한 운영을 하지 않겠다, 열심히 사람을 키워서 상위리그에 올려보내는 축구단을 만들겠다는 철학과 목표를 내세우게 됐다. 

중랑축구단이 운영하고 있는 U-12 유소년팀

– 그럼 비공식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내 아들이 초등학교부터 축구를 했다. 나는 축구 선수를 하고 싶어도 못했는데, 아들이 하겠다고 해서 바로 승낙했다. 그런데 아들이 초중고 선수를 거치는 동안 학부모 입장에서 학원 축구의 현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됐다. 잘하는 선수 한 명에, 여러 명의 선수들이 함께 상급 학교로 올라가는 현실도 목격했다. 그러다보니 선수 뒤에 있는 학부모들의 희생도 보였다. 자연스럽게 학부모회 회장도 맡게 됐다. 

내가 축구단을 운영하면서 학부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축구의 ‘스타 제조기’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대부분 감독의 이름을 대지만, 나는 진정한 스타 제조기는 한 명의 스타 선수를 키우기 위해서 옆에서 같이 뛰어주는 10명의 선수와 벤치 멤버들, 그리고 그들의 학부모들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말을 하면 학부모들이 막 운다.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아는 거다. 그런 현실을 보고 느끼면서 나는 그런 방식으로 축구 클럽을 운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우리 클럽은 상위리그에서 내려온 선수들을 절대로 받지 않겠다, 대신 선수들에게는 여기서 열심히 해서 다른 좋은 팀으로 가라, 하지만 우리 팀에서도 성공할 가능성이 없으면 축구에 미련을 갖지 말고 과감하게 은퇴하라고 권유한다. 

이런 운영 철학으로 팀을 이끌다보니 우리는 1년에 선수 교체가 가장 빈번한 팀이 됐다. 한때는 한 시즌이 끝나면 90% 정도의 선수가 바뀌었다. 지금은 그 교체 비율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 그런 기조 때문인지 중랑축구단에서 많은 K리거들을 배출하고 있다. 특히 2022년부터는 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던 김범수, 광주의 양창훈, 안산의 신민기, 전남의 김범진 등 다수의 K리거들을 배출했다. K4리그 팀에서 프로 선수를 만들기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런 면에서는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김범수는 현재는 안산 그리너스에서 뛰고 있지만 K4에서 곧바로 K리그1으로 올라가면서 ‘한국의 제이미 바디’라는 별명도 얻었다.  

좋은 선수를 우리 팀에 묶어두고 싶지는 않다. 우리 팀은 ‘상향식 운영’이 목표 아닌가. K리그에 진출한 선수만 따지니 손에 꼽는 것이지, 예전에 내셔널리그나 지금 K3리그에 올라간 선수들까지 합치면 휠씬 더 많다.

2017년 K3리그 베이직 우승을 차지했을 때.

– 클럽의 운영 철학은 잘 알겠는데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팬들은 아쉬울 수도 있겠다. 좋은 선수들을 항상 내주는 팀에 팬들이 로열티(충성심)를 가질 수 있겠는가. 

그게 정말 고민이다. 클럽의 운영 목표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는 점이 있었다. 우리 클럽의 창단 취지가 사회봉사나 장학사업 쪽 개념이 강하다. 그러다보니 선수의 성장과 상위리그 진출에 방점을 뒀다. 선수에 대한 배려에 비해 팬들을 배려하는 것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면이 있었다. 팬에게는 죄송한 마음이다.  

– 챌린저스 참가를 기준으로 해도 벌써 12년이 넘었는데 클럽 운영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역시 예산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한숨을 크게 내쉬면서) 일단은 열심히 사업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회사 규모로는 적지 않은 투자를 해왔다. 회사 구성원들이 양해를 해주었기에 가능했다. 다행히 류경기 중랑구청장님께서 축구에 대한 이해도가 높으셔서 지원을 확대해주고 있다. 덕분에 상황이 조금씩 개선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우리 클럽도 희망적이라는 판단도 한다.  요즘은 창단 취지를 유지하면서도 팬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향을 더욱 고민하고 있다. 지역 팬들의 성원과 인정을 받으려면 어느 정도 성적을 내야 한다. 지역 팬의 이해와 호응이 있어야 자연스럽게 지자체의 지원이 확대되는 선순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올해가 가장  분수령이 되는 느낌이다. 내년 시즌부터는 어떤 형태로든 지역 팬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가야만 한다. 

–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유소년쪽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K4리그  팀이지만 산하에 U-18, U-15, U-12 팀을 모두 구축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놀랐다.

K3리그 소속팀까지 범위를 넓혀도 유소년 시스템을 완비한 곳은 우리 팀밖에 없을 것이다. 1994년부터 전문 축구 선수를 대상으로 장학사업을 진행했다. 지금도 우리 클럽 소속의 유소년팀 전문 선수들은 모두 무상으로 축구를 배우고 즐기고 있다. 장학사업의 하나로 축구 선수들을 육성한다는 개념이다. 또 중랑구 관내에 있는 국공립이나 민간 어린이집 원생을 대상으로 매주 무료 축구교실도 운영중이다. 현재 1200여명의 지역 어린이들이 대상인데, 향후 3000명대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 3년 전부터 축구전문채널인 ‘풋볼TV’를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 개국은 못한 모양이다. 

(웃으면서) 지금도 준비중이다. 차근차근 콘텐츠도 축적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방송 사업 라이센스를 이미 취득했고 유효 기간이 아직 남아있다. 축구전문 방송의 꿈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내년 1월 중에 최종 결정을 내릴 예정이다.  



올초 열린 중랑축구단(노랑 유니폼)과 전북현대 B팀의 K4리그 경기 모습. 
 

– 이야기를 듣다보니 동키호테같은 기질이 있는 것같다.

마음 먹은 것은 반드시 하고야마는 스타일이기는 하다(웃음).  

– K3, K4리그 클럽 대표들끼리 소통하는 협의체는 있는가.

없다. 대한축구협회 주최로 3부와 4부 팀들 대표자 모임을 1년에 한번 정도하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3부와 4부에도 공동 마케팅이나 홍보를 할 필요성이 크다. 그런데 협회가 불필요한 이해 집단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몰라도, 협의체 구성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 같더라. 3부와 4부에는 지자체 예산을 받는 팀들이 많다. 지금까지는 협회가 3, 4부 팀을 계몽하는 입장이었다면 지금부터는 우리들끼리 스스로 협의체를 만들고, 공동의 안건도 논의하는 등 적극적이고 주체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지자체와의 긴밀한 관계를 만드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4부 팀끼리 사업도 같이하고, 공동 마케팅도 추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대한축구협회는 1부부터 7부까지 승강제로 모두 연결하는 디비전 시스템 구축을 2027년까지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협회의 비전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축구 선진국들이 모두 디비전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니 우리도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것은 맞다고 본다. 다만 지금의 3, 4부 팀들이 그런 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다. 지자체마다 여건이 다르고, 팀마다 입장이 각각이다. 특히 각 지자체가 지금 축구협회가 추진하고 있는 계획에 대해서 이해도가 얼마나 높으며, 적극적으로 동참할 의지가 있는지는 세밀하게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예산의 상당 부분을 내고 있는 지자체를 상대로 (이런 계획의 타당성에 대해서) 기본적인 설문 조사라도 한번 해봤는지 모르겠다. 

이런 큰 계획을 추진하는데 리스크(위기)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 대한민국 축구를 바라보는 지자체장의 생각은 특히 중요하다. 전국의 지자체를 설득하기 위한 노력과 공론화 작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디비전 시스템 구축을 위해서 시장(市場)에 완전히 맡기든가, 아니면 지자체에 충분한 자료를 제공하고, 설명해야 한다.  지역마다 유명한 연고지 축구 스타들을 대동해서 설명하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2017년 연말에 열린 대한축구협회 시상식에서 공로패를 받은 이민걸 구단주(맨 오른쪽).

– 2012년 챌린저스리그에 처음 참여할 때 어느 매체와 했던 인터뷰를 보니 “이 팀이 나중에 K리그에 올라가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고 대답했다. 지금 시점에서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무엇이라고 답하겠는가. 

(웃으면서) 그러지 말란 법은 없다고 하겠다. 

–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는가. 지금은 K3리그 승격도 당면의 목표로 상정한 것 같지도 않는데. 

앞으로 디비전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가동되면서 시장(市場)이 이런 계획에 의해 반응이 있고, 작동이 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판단들이 이뤄질 것이다. 우리 클럽의 장기적인 목표가 K3 승격이 될 수는 없다. 새로운 개념을 빨리빨리 찾아야 한다. 전혀 다른 세상이 올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이 대한민국 축구에 대해서 굉장히 호의적인 생각을 갖고, 축구 시장이 움직이면서 지자체도 인프라 등에 획기적인 도움을 준다면 진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이런 비전에 대한 설득 작업이 우선 전제되어야 한다. 상황이 변하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판이 펼쳐질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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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위원석(대한축구협회 이사, 前 스포츠서울 편집국장) 

사진 = 대한축구협회, 서울중랑축구단